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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된다면

 

0.

육체의 한계와 인식의 편견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개별적 사건과 체험으로 가득찬 삶 속에서 우리는 그저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거나, 다른 이의 눈에 비친 자신을 보는 좁고 얕은 시야로 살아갈 뿐이다. 저 높은 망루 위에 올라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싶지만 문학이나 영화 속 서술자의 전지적 시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저 먼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볼 수 있는 능력을 꿈꿔왔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예술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감각의 확장이라는 사건을 통해 시도되며, 자신을 조금이라도 종합적으로 정의내리고 싶은 욕망은 때때로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 싶다는 상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1.

젓가락, 접시, 소시지, 오렌지주스, 달걀……

 

그런 것들이 될 거야

사물이 된다면

달그락거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박시하, <구체적으로 살고 싶어>중에서-

 

만약 사물이 된다면, ‘달그락거림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어딘가에서 ‘달그락’ 하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그 달그락거림은 사물이기에 낼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몸의 소리이도 하다. 사물들은 몸의 반응이 그대로 소리가 된다. 솔직하고 숨기지 않는 목소리이다. 만약 그 안에 언어로 충족되지 않는 감정이나 생각들이 담겨 있다면, ‘달그락’이라는 소리는 더 정확한 목소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나의 언어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삶의 태도로도 연결된다. 작가라면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갖는 것이 사물의 달그락거림 소리와도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확장되는 개별적 시각언어는 인간을 망루 위에 오르게 할 수도, 바다 위를 떠다닐 수도, 우주에 가닿게 할 수도 있다.

 

2.

산은 젓가락, 접시, 소시지, 오렌지주스, 달걀보다는 거대하고 묵직하다. 움직이지 않아 더 흔들리지 않는 정확한 시각을 가질 수 있고 오랜 시간의 경험이 있기에 그 자리에서 본 것들을 말할 수 있다. 산의 위치에서 산의 시각으로 건너편 산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그 산들이 만든 행성을 바라보는 일. 신명준 작가는 ‘내가 만약 산이라면’ 이라는 상상을 통해 자신의 눈을 산의 시점과 교체해보며 지금보다 덜 흔들리길 소망한다. 산이 가진 그 긴 시간과 가늠할 수 없는 무게감을 동경하며. 작가의 그간 작업 중에 ‘NEVERENDING HOLIDAY’ 또한 그런 소망을 담고 있다. ‘끝나지 않는 휴가’라는 이 작업은 자신의 현실을 휴가로 만들어, 작업과 삶의 여러 부분에서 난관이 가득찬 현실을 다른 장면으로 전환하였다. 그에겐 휴가라는 상황이 여유와 즐거움의 감정보다는 작업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신명준 작가는 지금껏 ‘버틸 수 있는 힘’에 대한 생각을 이어왔는데, 작가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각이미지’나 ‘가능성’, ‘매체탐구’, ‘작업과 관객의 교감’ 등에 대한 고민 등이 녹아있어 보인다. 이번 작업에서도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 싶은 욕망, 산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싶은 욕망은 그런 고백과도 여전히 닿아있다.

 

3.

작가를 만나면 잘 하지 않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작업을 할 때의 기분이 어떠한지, 사람들에게 작업을 보여줄 때의 기분은 어떤지, 이런 질문들은 잘 하지 않는다. 어쩌면 작업을 통해 다 드러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런 질문들이 너무 원초적이라 질문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민망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명준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런 질문들이 오고갔다. 그가 어떻게 자신을 작가로서 ‘위치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나와야할 것들이 있었다. 한 자리에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매끄럽게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 이런 것에 작가는 익숙하지 않아 보인다. 머릿속에 헤엄치는 단어들은 굉장히 많은데 그것들을 잡기에 그의 손은 아직 미끄러운 듯하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아직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만약 그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계속 외친다면, 그 목소리는 어떤 언어를 갖게 될까 라고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그 언어가 지속된다면 어떤 단단한 시점을 만들게 될까 라는 질문도. 신명준 작가의 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런 미끄러운 언어를 다듬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4.

그는 이번 전시가 자신의 위치를 대변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거라고 말한다. position이라는 단어가 전시장에 위치해 있다. 아마 아직 언어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자신의 역할, 책임, 방향성 등은 신명준 작가만의 시각언어로 계속 다듬어나가야 할 것이다. 산등선의 둥그렇고 부드러운 선 또한 그런 오랜 세월을 품고 있다. 다만 그의 시간은 산의 시간과는 달리 그가 지각하는 것,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의 확장으로 속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간이 산의 시간을 따라잡아 신명준 작가만의 견고한 시점으로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글_전솔비